용왕의 왕국에서: 안동국의 회화
<안동국: 용과 바다> 서문, 2007년 3월 21일 – 4월 3일
제프리 웩슬러 (럿거스 대학 부설 짐멀리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안동국이 선보인 회화 연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흥분에 빠져들게 한다. 거의 모든 회화들이 엄청난 속도와 우연성으로 표면 위를 질주하는 빠른 붓질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거의 반세기동안 탁월한 창의성을 보여주면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빈번히 사용했던 기법이기도 하다. 이 생산적인 세월동안 안동국은 동서양의 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추상의 현대적인 개념과 작업방식을 한국적인 전통에서 유래된 기법과 주제에 결부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안동국의 예술은 붓을 사용해서 그리는 아시아 회화, 그 중에서도 선(禪) 회화의 가장 생동감 있는 형식들과 ‘액션 페인팅’이라 불리우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만남을 이루어 낸다. 안동국은 그동안 나무를 비롯한 자연물을 소재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전통적인 장르의 작업을 꾸준히 해왔으나, 보다 추상적이고 자유로운 형태의 작업으로 끊임없이 회귀함으로써 이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받아 인상적이고 일관성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본고에서 고찰의 대상이 되는 작품 대부분은 시각적, 기법적으로 상호 관련성을 맺고 있는 두 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1998년 무렵에 등장한 것으로 담황 또는 황금빛의 배경에 엄청난 힘과 함께 검정색으로 넓게 붓질을 한 작업을 들 수 있는데, 전통적인 필법인 ‘비백법(飛白法)’에 비견할 만한 기운생동의 검정색 요소들은 무서운 속도로 표면에 가해지면서 그 자체의 힘에 의해 부서지는 느낌을 더욱 증폭시킨다. 원래 액체상태의 먹물을 사용하는 이 기법을 아크릴 물감이라는 재료를 가지고도 그처럼 유연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아크릴 물감은 수성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점성이 크고 무거운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국의 아크릴 붓 터치는 마치 눈부신 공중 곡예비행처럼 느껴지는 가벼움의 본질을 보여준다.
안동국의 작업은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과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원천이 자연계에 있다는 문화적 인식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그가 이러한 미학적 개념을 견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한국적 배경에서 기인한 것이다. 제스처적인 성격이 강한 그의 회화는 동양 문화에서 널리 선호되는 창조물인 용(龍)을 연상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용이라는 동물이 사악한 것으로 묘사되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의 전설에서는 용이 긍적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예를 들어, 동양의 전설에 따르면 용은 신비하고 강력할 뿐만 아니라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안동국은 특히 본인의 회화 작업에 이러한 ‘자연적이고’ 유기적 세계에 대한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재현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품의 표제가 작업 전에 정해졌든, 혹은 완성된 후에 붙여졌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용은 안동국의 공중을 나는 듯 신명나는 강한 붓질과 완전하게 어울리는 이미지이다. 서양의 용과 비교해볼 때, 동양의 용은 몸체가 뱀처럼 긴 모양을 하고 있기에, 구불구불 똬리를 트는 용의 형상은 화면 공간 속에서 꿈틀거리고 급회전하는 작가의 붓 터치에 대한 매우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동양의 용 형상은 또한 수많은 복잡한 비늘무늬, 덩굴손, 그리고 몸체에서 뿜어지는 그 밖의 다른 연장선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전통 예술가들에 의해 장식적이고 정교한 선적 문양에 즐겨 사용되었는데, 어쩌면 안동국의 회화에서 주요 형상의 주변에 흩어지고 뿌려지고 흘려진 물감 자국들은 그런 요소를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숨으로 불을 내뿜는다는 용의 능력도 에 보이는 것과 같은 노랑과 빨강의 흩뿌려진 자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용은 물 또는 농경과 관련이 있고, 흔히 구름을 불러오거나 비를 내리게 하는 자비심을 발휘한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한국의 용은 바다, 강, 호수 등에서 기거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한국 신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용왕은 바로 바다의 왕이다. 용왕신이 한동안 안동국의 작품 세계에서 황금색 하늘을 배경으로 용솟음 쳤다면, 그 후 몇 년간은 다시 해저의 왕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 후 용이 출몰한 것은 다시금 관객으로 하여금 해저 거처의 신비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2006년 캔버스에 아크릴로 작업한 일련의 작품에서는 심해처럼 깊은 파란색 배경에 나른한 형태가 부유하면서 녹색, 분홍, 노랑의 인광을 발산하여 우리의 시선을 잡아채고 우리를 깊은 바다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이 때 용왕은 마지막으로 한번 모습을 드러내는데, <황룡(Yellow Dragon)>의 심해를 가르고 지나가면서 우리를 놀라운 수중 세계에 남겨두고 자취를 감춘다. 이 회화 연작에서 안동국의 제스처적인 충동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다소 절제되어 있어, 부드럽게 부유하는 형상들이 보다 느린 세계로 애써 도피하는 듯이 보인다. 여기서는 색색의 띠와 실개천이 더욱 복잡한 패턴으로 그려지고, 서로 겹쳐지는 구성의 모티프들이 보다 명확한 공간적 차원으로 전개된다.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즐거운 색의 배열이 신중한 구성적 배치를 통해 이루어지면서 전체적으로 부유와 상승의 느낌을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작품의 표제들은 뻔뻔할 정도로 서정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심해의 환상(Phantacy in the Deep Sea)>, <황혼의 파도(Wave in Twilight)>, 심지어는 <향수(Nostalgia)>도 있다.
이 회화들을 보면, 추상적인 방법을 통해 자연의 세계를 언급한다는 이상하지만 매력적인 논리를 인식하게 된다. 바다의 많은 생명체들은 육지의 것과 비교하여 시각적으로 실체가 없어 보이거나, 불규칙적이거나 혹은 가벼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플랑크톤, 말미잘 또는 해초처럼 작은 것들은 그 형태가 단순하거나 무정형으로 보인다. 안동국은 이를 이용하여 그의 역동적인 제스처를 통한 반임의적(伴任意的)인 물감 자국들로 붓 끝에서 생명의 암시를 이끌어낸다. 추상성 또는 사실성의 정도는 관객 개개인의 인식에 달려있다. 순전히 우연일 가능성이 많지만, <검은 물고기(Black Fish)>는 한두번의 빠른 제스처로서 화면의 중앙에 나타났다. 한편, <산호와 빨간 불고기(Coral and Red Fish)>에서는 물고기가 짧게 휘갈긴 터치에 지나지 않고, 산호는 단순히 질감이 있는 으스스하게 빛나는 붓질로 이루어져 있다. 마침내 전반적인 암시가 명확한 식별을 누르고, 다양한 너비로 섬세하게 교차하는 붓 터치들이 <바다의 사랑스러운 움직임(Loving Movement in the Ocean)>에 개념적인 광경을 만들어준다.
이번 전시의 회화 작품들은 안동국의 추상과 자연 사이의 혼성세계가 어떻게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안동국은 오늘도 오래된 기법과 주제를 시각적인 즐거움과 깊은 통찰력이 있는 신선한 세계로 변화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한국사회: 한국의 전설에서 용이 의미하는 것
한국의 용에 대한 미술작품 전시 오프닝을 맞아 문필가이자 민속학 전문가로, 뉴욕주립대(SUNY) 뉴팔츠(New Paltz)의 틈새문학연구소(Interstitial Studies Institute)의 하인츠 인수 펭클(Heinz Insu Fenkl) 소장은 동양과 서양에서 용이 갖는 상징적 의미에 관해 강연을 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뱀과의 연관성 때문에 서양에서는 용을 사악한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용을 상서로우며 무한한 힘과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는 신비로운 영물로 보았다. 펭클 소장은 이어서 한국의 용 도상과 보다 광범위하게 알려진 중국의 용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용에 관한 신화는 고대 중국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전설적인 중국 문명의 시조인 복희는 반인반룡(伴人伴龍)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전설이 한반도로 전해진 후에는 지역의 예술가들과 이야기꾼들이 스스로 전설의 내용을 변형시켰다고 한다. 중국과는 달리, 한국의 이야기꾼들은 용의 영적인 힘에 더 초점을 맞추었으며, 그로 인하여 한국의 중요한 신화나 설화에서 용이 주요 인물의 덕행을 반영하는 예언자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 중 중요한 것으로, 펭클 소장은 해저의 왕궁에 사는 인자하고 너그러운 성품의 용왕을 예로 들기도 하였다. 현대 한국에서도 표지판과 로고, 상표와 광고에 이르기까지 용의 이미지와 의미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인들은 용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 문화적 도상의 배후에 있는 전설에 대한 지식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펭클 소장은 결론적으로 “시간을 가지고 전시장에 걸린 용 그림을 깊이 연구해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