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추상 화가들
홀랜드 카터, 뉴욕 타임즈, 1997년 4월
“새로운” 미술사가 가르쳐주는 주요 교훈 중 하나는 예술이 얼마나 불순한가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술은 자연적인 발생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영향력과 우연의 일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생각은 럿거스 대학(Rutgers University)의 짐멀리 미술관(Zimmerli Art Museum)에서 열리는 “아시아의 전통과 현대적인 표현: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와 추상 1945-1970”라는 제목의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전시와 같은 이름으로 맨하탄의 타이페이 갤러리(Taipei Gallery)에서 열리는 보다 작은 규모의 전시에서 조명된다.
많은 회화와 조각 작품들은 훌륭하게 상상되고 또 실현된다. 비록 그들의 작품이 전후 시기 미국의 유명 추상화와 종종 평행선에 있거나 중복된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적은 수의 예술가들만이 친숙한게 느껴지는지를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시아 태생이고 많은 이들이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몇몇은 추상 표현주의의 전성기동안 미국에 있었고 이미 추상적 경향으로 유명한 아시아 예술의 현대화를 잘 받아들이는 관객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외국의 선례를 폄하함으로써 그 자체를 일부분 정의했던 “미국” 미술을 위조하려는 전위적인 의도였다. 로버트 마더웰(Robert Matherwell)의 캘리그라피적인 표현주의 연습은 칭송받았지만, 아시아적인 주제에 표현적인(gestural) 추상을 적용하는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은 종종 불만족스러운 모방작(pastiche, 파스티셰)으로 여겨졌다.
짐멀리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제프리 웩슬러(Jeffrey Wechsler)에 의해 기획된 “아시아의 전통과 현대적인 표현”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추상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강력한 논거를 제시한다. 그는 정신에 있어서 자기주장보다는 자연과 사상에 중점을 두고 있는 추상화가 근본적으로 아시아의 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추상표현주의 (표현적인 붓질과 제한된 색상)의 특징들이 아시아의 예술에서 오래된 선례를 보인다고 제안한다.
짐멀리 미술관에 있는 북경 출신 화가 체 창(Che Chuang)의 첫 작품인 “가라앉는 별(Sinking Star)”(1967)에서 분명회 볼 수 있는 역동적인 하이브리드 미술이 그 증거다. 추상적인 획의 무리와 중국의 상형 문자 옆에 덧칠해진 물감같은 것들 말이다. 여기에 사용된 화선지와 신문지 위의 유화라는 바로 그 매체들은 서양과 아시아의 관습을 혼합한다.
이 전시는 횡문화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현대적인 모습의 고전 철학(Ancient Philosophy in Modern Forms)”에서는 선종회화의 화법에 영감을 받은 한국 태생 안동국(Don Ahn) 작가의 활기 넘치는 붓질과 흩뿌리는 잉크로 이루어진 작품과 1912년 중국 태생의 치 첸(Chi Chen)의 빛나는 수채화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수채화는 1960년대의 색면회화를 연상케하면서도 도교의 슬기로운 노자의 말을 포함시킨다.
풍경과 문자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회화가 절대 전적으로 추상적일 수 없다는 생각은 “추상과 자연(Abstraction and Nature)”이라는 두 번째 부분에서 검토된다. 다이애나 칸(Diana Kan)은 산경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검은 잉크 얼룩에 작은 나무와 집을 많이 넣었다. 타다시 사토(Tadashi Sato)의 하얀 땅을 회색 구체로 톤을 조절한 유화는 추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바위 위로 흐르는 물을 묘사하고 있다.
완전한 추상화로의 다리는 일본 출생의 겐조 오카다(Kenzo Okada)(1902-1982)의 작품에 나타난다. 겐조 오카다는 1950년대에 베티 파슨스(Betty Parsons)와 뉴욕에서 전시를 했고, 그의 납작한 형태는 아시아 모더니즘적인 만큼 서양의 모더니즘적이기도 하다. 시벨리우스(Sibelius)와 스트라빈스키(Stravinsky)의 작품을 위해 이름 붙여진 제임스 스즈키(James Suzuki)의 그림들과 고전적인 뉴욕파의 스타일로 번호를 매긴 마사토요 기시(Masatoyo Kishi)의 그림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유기적인 것[여기서는 구상, 즉 재현을 의미함]과 추상적인 것의 균형은 짐멀리 미술관 컬렉션의 조각들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태생의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1904-1988)와 미노루 니즈마(Minoru Niizuma)는 그러한 지점에 있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들의 작품은 메마른 정원이라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 공간(simulation)에 설치되어있다. 그러나 아시아계 미국인의 복잡한 크로스오버 패턴은 서예라는 주제를 다루는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난다.
전시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이 마지막 부분에서 전통적인 형태에 대한 현대적인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예를 들어 이들은 웰라스 팅(Walasse Ting)의 마더웰(Motherwell)에 대한 명백한 수긍으로서 “고야 오마쥬(Homage a Goya)”라는 제목의 우뚝 솟은 아크릴 페인팅부터, 우치우스 웡(Wucius Wong)의 서양과 아시아의 문자를 결합시킨 수묵화 그리고 체 창(Che Chuang)의 몬드리안같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캔버스에 ‘사랑’이라는 단어의 한자와 그 가운데에 하트가 그려진 작품까지 아우른다.
이 전시에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미술의 아시아적인 뿌리를 분명히 하기 위한 앨범이나 학자의 바위(scholar’s rocks)같은 역사적인 작품들 몇 점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융합은 같은 이름으로 맨하탄의 타이페이 갤러리에서 열리는 작은 전시에서도 강조된다.
[마찬가지로] 짐멀리 미술관이 기획한 이 작은 전시는 C. C. 왕(Wang)의 고전적인 화풍의 수묵산수화로 시작된다. 1917년에 태어난 왕씨는 중국과 서양 미술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그의 작품들은 중국의 회화와 서양의 추상을 구분하게 해주는 너무나도 다른 그 영적, 형식적 에너지의 좋은 본보기이다.
타이페이 갤러리에 있는 그의 작은 산수화는 특히 아시아적인 맥락 내에서 혁신적이었으며, 다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이를 보완한다. 예를 들어 기하학적인 추상이 금박에 의해 더욱 생동감있어지는 유호 칭(Yuho Tseng)의 사랑스러운 격자무늬 작품과 밍 왕(Ming Wang)의 글과 그림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는 서예적인 만다라(불교 등에서 우주 법계의 온갖 덕을 나타내는 둥근 그림)는 이를 잘 보여준다.
확실히 “아시아의 전통과 현대적 표현”과 같은 전시를 열기에 적절한 시기가 되었고, 짐멀리 미술관은 통찰력과 침착함으로 그 기회를 잡았다. 아시아 예술은 미국에서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현대 미술과 동시대 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취향은 분명하다. 이 전시의 많은 작가들은 여전히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으며 많은 관람객의 주목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요즘 짐멀리 미술관을 방문하는 이유는 역사 역사적인 교훈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예술이 응당 그러해야 하듯이 종종 눈부시고 항상 자극적이며 또 약간 이상하기까지한 회화나 조각을 위해서다.
“아시아의 전통과 현대적인 표현: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와 추상 1945-1970”은 뉴저지 주 뉴브런즈윅(New Brunswick, N.J)에 있는 럿거스 대학의 짐멀리 미술관에서 7월 31일까지 열린다. 이후 전시는 9월 6일부터 11월 2일까지는 시카고 문화센터(Chicago Cultural Center)로 그리고 12월 10일부터 1998년 2월 14일까지는 로스 앤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남캘리포니아 대학9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피셔 갤러리(Fisher Gallery)와 일본계 미국 국립 박물관(Japanese-American National Museum)으로 순회전을 돈다. 동명의 보다 작은 규모의 전시는 맨하탄 48번가에 있는 타이페이 갤러리에서 5월 9일까지 열린다.